시와 감상

안개의 기원[박제영]

JOOFEM 2010. 1. 23. 22:49

 

                                             목향이란 분이 그린 춘천

 

 

 

 

 

 

 

 

안개의 기원[박제영]

 

 

 

 

 


춘천 춘천 나지막이 춘천을 부르면 출렁출렁 안개가 새어 나옵니다 아니 정확히 안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춘천이라는 말, 그 말에 한 번이라도 닿은 것들은 마침내 안개가 됩니다 아니 호수에 비친 얼굴이 안개처럼 흐려졌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단지 떠도는 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횃불을 들고

안개 자욱한 공지천변을 따라 고슴도치 섬까지 걸어갔더랬습니다

춘천의 정현우 시인이 그랬거든요


고슴도치 섬에는 안개공장이 있대

퇴출된 詩노동자들이 섬 밖으로 안개를 나르고 있대*


과연 그러했습니다 늙은 난쟁이들과 맹인들이, 물론 그들은 퇴출된 습지의 시인들입니다, 섬 밖으로 안개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안개의 기원인가요? 아니라고 더 깊은 곳까지 가보라고 자기들도 그곳에서 온 물과 바람과 나무와 풀로, 고양이의 울음과 쥐의 눈물과 도마뱀의 오줌으로 안개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안개 속에서 더 깊은 안개 속으로 그렇게 한참을 걸어 들어갔더랬습니다

사람도, 나무도, 강물도 안개가 되어버린 그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무 것도 없습디다

춘천에서 안개의 가장 안쪽을 아주 오래 걸어보았는데

마침내 아무 것도, 안개도 없습디다

 

 

 

 

* 금요일 아침엔 팀장 이상 주간회의가 있다.

영업팀에서 경춘선 열차에 견적을 제출중이라고 보고했다.

2층으로 된 관광열차라 에어컨이 제법 돈이 될 법 했나보다.

보고를 받던 사장님은 얼마전에 경춘고속도로도 만들었는데 2층관광열차는 왜 만드는거냐고

춘천엔 뭐 볼 게 있느냐고 눈을 꿈뻑거리며 물었다.

춘천엔 뭐 볼 게 있을까, 모두들 한바탕 웃고 말았다.

 

스무살 시절엔 춘천의 소양강댐이나 배타고 들어가던 절이 생각난다.

연인이 이별할 땐 카페 이디오피아를 간다고 하던데 가본 적은 없다.

대개 강촌이나 대성리나 이런데를 엠티장소로 애용하곤 했다.

춘천막국수나 춘천닭갈비가 유명하긴 하다.

아마도 청춘이 다녀가는 곳이 청년춘천인가 보다.

안개 자욱한 춘천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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