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구석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리고
로션을 가볍게 바르고는 다시 웃는다
웃음이 두 번 죽지만 남자는 여전히 보지 못한다
이번에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린다
남자는 쌓이고 쌓인
그들의 죽음을, 남자의 죽음을, 오늘의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남자가 떠난 후,
시취尸臭가 향수처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거울 속에는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
속속 살아나기 시작했다
* 가끔 거울을 볼 때,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어, 주인서씨가 왜 거울 속에 있지?
어, 아버지가 왜 거울속에 계시지?
어려서는 외탁했다고 엄청 구박도 받고 나와 다르게 생긴 아버지와 형을
다른 인류로 생각했었다.
한데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아버지와 닮았고 형과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울이나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영락없이 형의 모습이다.
지난 날, 난 얼마나 다른 인류를 미워하고 다르게 대하였던가.
매일 면도를 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형을 만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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