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봄날은 간다[김은령]

JOOFEM 2010. 3. 21. 19:50

 

 

 

 

 

 

 

 

봄날은 간다[김은령]

 

 

 

 

오봉순, 삼십 대, 나이 정확히 모름

경북 경산시 하양읍 동서3리, 이장님의 눈총과

배려 속에 마을회관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여자

남편, 가끔 보이기도 함
출생내력, 알지 못함

한글을 모를 뿐더러 숫자 개념이 없어

시간제로 일하는 단순노동의 임금을

종종 떼어먹히는 줄도 잘 모름

유일한 희망이자 낙은 그 날 번 일당으로

마을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맥주 한 병 사 마시는 일

아이 셋, 또래와 같이 학원도 보내야 하고 컴퓨터 사 달라고 졸라

당분간 맥주 한 잔 포기한다고 구멍가게 집 아줌마와 이장님께 선언함

 

대추꽃 피는 마을

마을회관 높은 방 벽과벽 사이 삼각의 꼭지점

거미, 집을 짓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막

기진맥진한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투명한 알 지금 부화 중이다

 

 

 

 

 

 

 

 

* 투명한 알이 부화하면 몇 마리나 살아남을까.

수많은 알 혹은 정자 가운데 생명의 혜택을 입은 존재는 얼마나 될까.

또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데 그 유일한 낙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삼시 세때를 먹으며

소설을 읽을 수 있으며

컴퓨터로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블로깅을 하며

핸드폰으로 문자질을 하며

보고싶은 영화를 보며

매일 씻고 정수된 물을 마시며......

이런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몇퍼센트나 될까.

 

오봉순씨는 맥주 마시는 유일한 낙을 포기한다고 구멍집 가게 아줌마와 이장님께 선언을 한다.

봄날이 가버리고 말았다.

어느 곳이든 대추꽃이 많이 피어서 많은 열매들이 달리고

풍요로움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낙을 즐기며 살면 좋겠다. 그게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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