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빗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리들 우산 안에 들어와 있다
잠시 접혀있는 우리들의 사랑 같은
우산을 펴면
우산 안에서 우리는 서로 젖지 않기
외로움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서로 젖지 않기
물결 위로 혹은 꿈 위로 얕게 튀어오르는
빗방울 같은 우리 시대의 사랑법 같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 오는 날 우산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
비는 내려서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흘러가지만
정작 젖는 것은 우리들의 여린 마음이다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물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산만큼 작아져서 정답다
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있는 한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하늘 같은 우산 하나
누구에게나 있다
- 우리들의 우산, 전문
김종해 시선 우리들의 우산,을 보았다. 1963년 자유문학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을 시작으로 9권의 시집과 2권의 시선집을 낸 시인의 시력이 55편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시선집이다. 장편 서사시 천노, 일어서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에서 모은 시편들이다.
시인은 인간의 내면의식을 천착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고뇌하며 거친 바다와 같은 삶을 '수부'처럼 살아가는 소시민의 고통과 슬픔을 점묘법으로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쉼 없이 흔들리는 삶이지만 배의 밑짐처럼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어머니'가 있어 망망대해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는 사모(思母)의 시편들에 이르기까지 시집 우리들의 우산은 50년 시업을 이어오는 동안 확장과 진화를 거듭하며 도저한 시세계를 일궈온 김종해 시인의 시정신을 집약시켜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 우리들의 우산,에서 시인은 화합과 상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상을 꿈꾸고 서로 다른 하늘을 바라보며 갈등과 반목의 직선주로(直線走路)를 내달리던 우리들에게 이제 그 직선주로의 끝과 끝을 잇대어 합일을 이루는 원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물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둥근 "우산 속"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우산안에서 우리는 서로 젖지 않기/ 외로움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서로 젖지 않기/물결 위로 혹은 꿈 위로 얕게 튀어오르는 /빗방울 같은 우리 시대의 사랑법 같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오는 날 우산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라는 선언적 화법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힘으로 우리의 뻣뻣한 몸을 돌려 세운다. 또한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는 반어법으로 시작의 첫발을 내딛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뒤이어 "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 있는 한/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 하늘 같은 우산 하나/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로 우리 모두는 아직 발아하지 않은 씨앗(사랑) 하나 가슴에 품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렇듯 결곡한 시편들로 채워진 시선집 우리들의 우산에는 시인이 한국시인협회 회장 재임시 발표한 '시인 선서'의 결곧은 시인정신이 흐르고 있으며, 이 시집이 "만해의 시정신을 기리는 일의 하나로 펴내게 된 것"이라는 '만해사상 실천선양회'의 정신과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필자는 시집에 수록된 연보를 읽으며 어쩌면 이 지상을 살아온 삶의 족적들이 ""시인이여, 시여,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그늘진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고 한 '시인 선서'의 실천적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 문학과창작 2013 봄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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