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번뇌 [복효근]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푸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 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달아실시선, 2017
* 아무리 인격이 고매하고 수련이 잘 되었다 하여도
인간이 가진 품성에 희노애락이 표현되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기쁠 때는 기쁜 표정을 짓고 슬플 때는 슬픈 표정을 짓고 화가 날 때는 화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속마음을 감추고 겉은 아닌 척 해봐야 속만 상하고 병이 될 수 있다.
초연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꾹꾹 참으면서 살면 손해보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매번 폭발하며 살면 인격이 땅바닥에 떨어지니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번뇌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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