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가 많은 시 [노미영]
숨이 차서,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너무 쓰지 않아서,
쉼표가 많은 시를 쓴다,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고 싶은데,
쉼표가 만개한 시간이 그득하다,
강박强迫과 편집偏執이,
파르스름한 저녁을 반복하고,
눈이 부신 뭉게구름을 삶아낸다,
흥건한 카펫은 탈수되지 않고,
후박나무는 벼락을,
비껴가며 미래까지 숨 쉰다,
쉼표가 많아서,
드문드문 숨 쉬고,
쉼표가 많아서,
구멍이 자꾸 생긴다,
한 사람을 똑같이 웃게 하고,
한 사람을 똑같이 울게 한다,
숨 가쁘게 남은 생이 빙그르 돈다,
한 사람의 얼굴이 두 사람의 숨이, 세 사람의 약속이,
잦아들어간다, 꺼져간다,
끝나지 않는 한숨이,
무수한 쉼표를,
먼 하늘에 비늘처럼 박아놓는다,
우리들은 영원히 붙박여,
놓여나지 못한다,
멈추지 않는 쉼표가 된다,
퍼진 별무리가 된다,
- 봄만 남기고 다 봄, 달아실, 2023
* 옛날 시인들은 쉼표, 마침표를 또박또박 찍었다.
마치 와이셔츠 단추를 다 잠그듯.
요즘 시인들은 쉼표는 가끔 쓰지만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마치 나는 영원한 시를 남길 것이야, 라는 의미로.
거기까지는 헐렁한 옷으로 자유롭게 시를 쓴다 하겠지만
한술 더 떠서
글자를 누이고 뒤집고 늘이고 작게 했다 크게 했다 별짓을 다하다 못해
동굴속에서나 보는 요상한 그림들도 등장 시킨다.
튀고 싶어서? 아니면 차별화하고 싶어서?
아니면 블로그에 옮기지 못하게 하려고?
취향은 존중하겠으나 우주로 날아가지는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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