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아는 어른을 지날 때 드는 생각 [손유미]

JOOFEM 2024. 3. 30. 10:47

요즘 것들은 다 예뻐.

 

 

 

 

 

아는 어른을 지날 때 드는 생각 [손유미]

 

 

 

 

  외출을 했다 외출하고 싶지 않았는데 외출을 했고 길에서

아는 어른을 만났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저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게 처음이 아니다

 

  인사를 하지 않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네, 저 친구 나는

어른을 뒤에 두고 어른의 목소리로 말한다 인사를 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어른이여, 나는 하는 일이 없고 할 일이 없고

계획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른이여, 나는 살아있는 사람 역할입니다

 

  어른을 지나고 나는 후회한다 외출을 하고 어른을 만나고

혼자가 훼손되었다 동네 개는 우리를 보고 짖는다

 

  어디까지 돌아갔을까, 어른이여 나쁜 의도를 갖지 않은

가까운 미래여 오늘 당신은 나를 발견하고 여기구나, 여기

서부터 너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보잘것없어졌구나 우리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오후의 빛 너머 최악의 상황에서 지켜보는 나여

  당신에게 가까워지는 길이다

 

 

                - 탕의 영혼들, 창비, 2023

 

 

 

 

 

 

* BC 1700년 수메르시대, 점토판 문자에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 인간이 동굴에서 살 때에도 동굴 벽에다 '요즘 것들은......'이라고

욕을 했다고 한다.

 

키오스크가 대세인 요즘 나는 햄버거 하나를 사먹기도 버겁다.

단추를 여럿 눌러서 계산까지 했지만 마지막으로 번호표를 뽑았어야 했는데

모르고 앉아서 대기했다.

한참 뒤에야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알바생에게 물었더니 번호표 뽑는 단추를 누르라는 것이었다.

오홋,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걸 귀신같이 알고 있을까, 감탄하며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 햄버거를 먹었다.

이러니 요즘것들이 어른을 알길 무식한것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정오의 삶을 넘기 전이냐, 넘은 후냐에 따라서 

요즘것들이 되거나 무식한것들이 되는 게 안타깝다.

나이는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먹는 것이니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 역할을 하며 살면 좋겠다.

나, 오늘 살아있는 날, 生日이야.

너도 오늘 생일이지?

우리 모두 생일을 살자!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구나무 비행기 [고민형]  (0) 2024.04.08
쉼표가 많은 시 [노미영]  (1) 2024.04.07
목련이 환해서 맥주 생각이 났다 [김서현]  (0) 2024.03.29
감정의 꼬리 [강혜빈]  (0) 2024.03.24
분멸 [김소연]  (2) 202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