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냄새가 나는 식탁 [강성은]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모두 눈을 감는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아이는 궁금하다 눈을 떠도 음식은 보
이지 않는다 음식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다 하얀 천 아래 무엇이 있
을까 하나님이 주신 것 살며시 손 내밀어 식탁보를 들추려 할 때 거
센 손이 아이의 손을 후려친다 기도는 산산조각 난다 사방에서 무서
운 침묵이 아이를 노려본다 식사는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된다 희고
고요한 천 아래 보이지 않는 오늘의 양식은 오늘도 아이에게 오지
않는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있다
- 현대문학 2024년 3월호
* 기분탓일까.
이 시를 읽으니 하얀 찔레꽃이 떠오른다.
보릿고개란 말을 알고 자란 세대는 하얀 찔레꽃을 따먹고 자랐을 테다.
하얀 꽃을 따먹지 않아도 눈으로 드는 흰 고봉밥 같은 찔레꽃이다.
혹은 이불 밑에 고봉밥그릇을 만지다가 거센 손으로 한대 맞고
움찔했던 기억도 있을 테다.
한끼의 식사가 소중하고 귀했던 시대에 있을 법한 얘기다.
요즘은 '오늘 뭐 먹지?'
피자를 먹을까 파스타를 먹을까 삼겹살을 구울까 오마카세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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