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밭 한뙈기 [황규관]

JOOFEM 2025. 8. 9. 10:34

밭 한뙈기에서 나온 걸 내다파시는 할머니들. 손주 용돈 주려고.

 

 

 

 

 

밭 한뙈기 [황규관]

 

 

 

 

어머니가, 예전에 살던 마을로 가는 길 옆에

작은 밭을 얻어 부친 적이 있었다

한 삼사년 퇴비 내고 김을 매

얼갈이배추도 심고 도라지도 심고

상추도 깨도 조금씩 걷어 먹었다

오랜만에 내려간 내게

콩 자루를 안겨주시고, 가을이면

고춧가루와 노란 참깨를 

보내주시고는 했는데

흙에 검은 빛이 돌 무렵

난데없이 밭주인이 그만두자 했다

어머니의 발자국을 거두어갔다

이제 부쳐먹을 만헝게 가져가부렀다

아까워 죽겄네

약간의 설움을 내게 비치셨지만

나는 그때도 앞가림에 허덕일 무렵

땅 한 평 없이 건너오신 세월 앞에서

무슨 궁리를 해보나 마나

주머니에는 먼지만 가득했고

차가운 바람에 등짝이 내내 시렸다

가진 거라고는 가만히 내다보는

저물녘뿐

 

밭 한 뙈기 없는 세상에서

새로 뜨는 해는 어디서 맞을 것이며

어둠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

 

 

                     - 뒤로 걷는 길, 창비, 2025

 

 

 

 

 

 

* 텃밭을, 얼마 돈을 내고 감자, 고구마, 상추, 고수 등등을 키우는 친구들이 있다.

때때로 검은 봉다리에 이것들을 잔뜩 담아와 주고 간다.

나에게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지만 베란다 식물들 돌보기도 벅찬데 채소까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그래도 친구들이 주는 것을 먹으면서 나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밑줄을 쫘악 긋고

덤으로 상추에 묻어온 달팽이를 화분에 놓아주고 남는 상추로 키워주고 있다.

사먹는 상추는 비싼데 얻어먹는 상추는 왜 이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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