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 [최동룡]
하늘은 언제나 목마른 자를 위해
한 삽 가득 눈발을 퍼붓고
창가엔 차곡차곡 시집이 쌓이고
우리는 그것이 게워내는
무수한 표정을 지나
가파른 산행을 한다
제 흥에 겨웠다 지는 바람
살아온 절반은 길섶에 묻어두고
고삐처럼 끌고 다니는 저마다의 길
더러는 자투리로 꽃 한송이 피울
언덕도 있었다만
벼랑을 딛고 선 갈참나무 쓸쓸한 목숨으로
눈발은 더욱 사나와지고
추억 밖의 얼굴들 우수수
떡갈잎처럼 일어선다
봄, 여름, 가을, 차곡히 밟고 와
시린 발끝으로 선 나무들
고뇌의 껍질 켜켜로 벗는다
언 땅을 파고드는 뿌리의 몫으로
나뭇가지의 먼 세상도 보이고
우리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올라야 할 묻힌 길 찾아 헤맨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돋아나는 반듯한 무리의 땀방울마저
눈보라에 빼앗긴 채
돌아설 건가, 되돌아가
억새 눕히는 한소절 바람되어
결 고운 걸음마를 다시 배울 건가
가지에 매달리는 하얀 눈꽃송이
그 빛나는 눈빛이
빈 밭의 원고지 위에 하나, 둘 뛰어내릴 때까지
이 바람부는 산행은
시집<슬픔의 현>.시와시학사.1995
*겨울산행은 슬픔사이로 거니는 산책이다.
가늘고 초라해 보이는 나무들은
춥고
그래서 이를 악물거나
세상을 향해 욕하며 간신히 겨울을 인내한다.
슬픔 사이 사이
길은 눈과 얼음이 어우러져
나의 몸을 쓰러뜨리려 한다.
겨울산행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건
아이젠, 아이젠뿐이다.
평화가 그리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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