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JOOFEM 2005. 7. 23. 15:56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란이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한계령에서 이런 횡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나도 몸둘 바를 모르리.

그런데 정말 이번에 몇십년만의 폭설로 이틀이나 꼼짝못한 이들은 횡재했을 터인데

욕설이 난무하고 무질서가 판을 쳤다니 연가는 커녕 지옥연자를 써서 연가가 될 터이다.

때로 시간에 갇히고 공간에 갇혀 눈부신 고립을 꿈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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