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 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시집<흔들리지 않는 갈대>.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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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전두환정권의 폭압속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최루탄으로 자욱할 그 때
참으로 많이 읽혔던 시였다.ㅣ
우리들의 노래가 앞을 볼 수 없고
그야말로 절망에서 헤매일 때
우리의 절망을 더욱 절망스럽게 했던 시.
이제는 민주화의 함성도 퇴색되고
자유를 갈망하지도 않지만
미국의 경제적 폭압속에서
아이엠에프와 빈익빈부익부의 논리하에
우리를 가난한 맹인 부부가수가 되게 한다.
다시 읽어야 될 노래가 되었다는 말이다.
강산이 두번 바뀌어도 이 시는 여전히 좋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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