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맹인 부부 가수[정호승]

JOOFEM 2005. 7. 23. 15:47


 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 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시집<흔들리지 않는 갈대>.미래사



 


*그때 그 시절
전두환정권의 폭압속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최루탄으로 자욱할 그 때
참으로 많이 읽혔던 시였다.ㅣ
우리들의 노래가 앞을 볼 수 없고
그야말로 절망에서 헤매일 때
우리의 절망을 더욱 절망스럽게 했던 시.
이제는 민주화의 함성도 퇴색되고
자유를 갈망하지도 않지만
미국의 경제적 폭압속에서
아이엠에프와 빈익빈부익부의 논리하에
우리를 가난한 맹인 부부가수가 되게 한다.
다시 읽어야 될 노래가 되었다는 말이다.
강산이 두번 바뀌어도 이 시는 여전히 좋은 시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화의 강1[마종기]  (0) 2005.07.23
한계령을 위한 연가[문정희]  (0) 2005.07.23
겨울산행[최동룡]  (0) 2005.07.23
별들의 합창[김 소엽]  (0) 2005.07.21
첫 마음[정채봉]  (0) 200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