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네 살의 산꼭대기 [김정란]
난 스물 네 살에
산꼭대기로 올라가기로 결정했어
웬만큼 살았으니까
이젠 뭘 좀 알아야 하잖아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몸을 돌려보았어
내가 지나온 계곡 물이 환히 보였어
나는 깃발을 들었어
바람이 불어왔거든
신호가 필요했어
바람에게 내가 거기 왔다는 걸
알려야 하잖아
계곡에선 듣건대 대개 엇비슷한 얘기들뿐이었어
그런데 왜들 그렇게 갈팡질팡 법석인지
도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
난 요정처럼 팔랑팔랑 뛰었어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산꼭대기에 올라왔어
바람에게 물어보면 가르쳐줄지도 모르잖아
밤새 그곳에 있었어 깃발을 들고
밤이 내리고
어둠이 숲 위에 긴 망토를 덮었어
달이 떠오르자 숲이 바르르 떨었어
그러자 숲속에서 만물이 천천히 걸어나왔어
귀신들이 哭을 하고 어디선지 음울한 방울소리도
들려왔어 윙윙 바람이 상형문자로 불었어
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어
신성한 소름이 내 몸을 유선형으로 만들었어
밤속으로 내 날렵한 몸이 튕겨나갔어
하지만 그뿐, 난 다시 땅바닥에 던져졌어
바람 소리 귓가에 윙윙대고
지금은 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
무서워서 너무나 무서워서 내 몸은 떨고 있어
하지만 알고 싶어
바람의 말을 언젠가 배우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어
그럼 계곡에 가서 사람들이랑 살아야지
오래 오래
주름살마다 바람의 말 참하게 새겨넣고
* 오우! 부러워라,스물넷. 지금은 noon of life. 상승정지증후군을 앓고 있는 나이랍니다. 에잇.오년만 젊었어도....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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