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 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지금은 여의도에 벚꽃이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이름하여 윤중로.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겨우 어린 나무를 심은 터라 정말 볼품이 없었고 강변엔 흙을 아무렇게나 갖다뿌려 놓은지라 야구를 할라치면 불규칙바운드로 인해 실력발휘가 안되던 곳이었다. 37번버스를 타려고 한참을 걸어다니던 그 곳,윤중로는 벚꽃이 한창 만개를 준비하고 있다. 세월은 흘러흘러 그 시절의 여의도는 없고 시적인 영감도 주지 않지만 튀밥같은 벚꽃들만 사람들을 반긴다.
한겨울 웃음없이 지내다 딴세상 보듯 하얀 웃음이 천사의 빛깔인 양 눈이 부시다. 그래, 우리, 여기서 쬐금만 더 머물다 가자.
* 새벽날개님의 사진에서 퍼왔는데 참 아름다와라, 봄꽃이 그린 그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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