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건강한 슬픔[강연호]

JOOFEM 2006. 11. 30. 00:12

 

 

 

 

 

건강한 슬픔[강연호]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래만이라는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정도 사이였기에 오래 연락이 없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도 서로 멀리 있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창문 밖에서 귓바퀴를 쫑긋 세운 나뭇잎들이
머리통을 맞댄 채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럴 때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참 내밀해 보였다
저렇게 귀 기울인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바람과 강물과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었다


그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그녀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 깊숙이 울었다

 





* 누군가에게 스스럼없이 울음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함이 있다는 거다.

  억압받고 살면 전화를 끊고 나서야 비로소 울음을 운다. 그것도 혼자.

 

  세상에 나의 울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그저 나에게 귀기울여 울음소리 들어주는 이를 하나쯤

  만들어둘 일이다.

  

  나, 당신의 그 말에 상처가 생겼어. 하지만 상처는 받지 않을께.

  그래, 그랬구나. 내가 너무 차가왔구나. 그랬구나.

 

  꼭 울음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시선을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