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난 뒤의 팬티 [오 규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Km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
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
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者도 아닌 죽은 者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허울만 좇다가 죽는지도 모른다.
마치 전등불빛을 사모하다 날개가 뜨거워져 죽는 날벌레처럼 말이다.
죽고난 뒤의 팬티가 무어 그리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스운 일이다.
깨끗한 영혼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들이 소망하는 것일 터이다.
팬티보다 더 깨끗한 영혼을 위하여......
시인 오규원님이 별세하셨다.
참으로 좋은 시를 쓰다 일생을 마감하였으니 죽고 난 뒤의 팬티를 걱정 안할 것이다.
언젠가 교회 전도지에 이 시를 게재했다가 목사님으로부터 팬티!라는 詩語때문에
태클을 당한 적이 있다.
이 시를 실었던 것은 나름대로 전도의 뜻이 있었던 건데.....
세상적인 의미의 팬티는 영의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도 아닌데
죽고 난 뒤의 세상이 뭐 대단하다고......
지금도 세상사람들은 손에 움켜쥔 것을 놓지 않으려고 탐욕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영화 '파계'에서 스님은 수도승에게 물그릇 하나를 키우라는 숙제를 주고
수도승은 몇날며칠 끙끙거리다 물그릇을 냅다 벽에다 던져 깨뜨린다.
물그릇을 키우려는 세상적인 집착심을 버리라는 말이다.
팬티 그까이꺼 대단한거 아니니 신경쓰지말고 살아야지.
어쨌거나 오규원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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