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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버려진 사람은 버려진 그 순간을 기억하며 필사적으로 그 기억을 움켜쥐고 산다.
내 다시 버린 사람을 만난다면 꼭 꼭 물어보리라.
왜 나를 버리셨나요.
왜 나를 찾지 않으셨나요.
원망과 분노의 마음이 내면 깊숙히 꼬깃꼬깃 접혀져 있고
만나면 펴리라, 만나면 펴리라.
긴긴 세월을 한줌 톱밥 태우듯 주먹 꼭 쥔 채 살았을 게다.
어제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스키선수가 된 D가 생물학적 아버지를 만났다.
디엔에이도 일치하고 모습도 비슷하다.
왜 찾지 않으셨나요, 던진 질문은 한줌 톱밥 태워지듯 태워지고
생물학적 존재가 명백히 밝혀졌다.
다시 만남은 행복할까,
이미 함께 탔어야할 기차는 떠나가고
각기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나뉘어
D야, 아버지, 서로 부르며 헤어져야 할 테다.
끝내 D의 손을 놓았던 운명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