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세상은 온통 몸값을 올리느라 혈안이다.
마치 몸값만이 내 삶을 평가받는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포츠맨의 정신은 스포츠맨십이지만
스포츠맨의 몸은 억대연봉을 향해 압제되어 있다.
직장인의 애환은 삶의 고단함이 아니라
연봉에 의해 자신이 평가됨으로써 느끼는 고립감, 혹은 좌절이다.
책방에는 몸값 올리는 방법을 코치해 주는 책으로 가득하고
돈이 돈버는 법을 비밀처럼 알려주는 책으로 가득하다.
- 엄마, 공부는 왜 해야 돼?
- 응, 그래야 이 담에 돈을 많이 번단다.
인간의 삶이 몸값, 혹은 돈에 노예처럼 굴복하며 산다.
삶의 리비도는 사랑에 있지 않고
돈에 있는 것처럼 세상은,
온통 긍정적이지 않은 밥으로 연결되어 있다.
- 엄마, 공부는 알맞게 하고 사람으로 살면 안돼?
- 그래, 적게 벌고 적게 먹고 푸른 바다처럼 상하지 말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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