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못 위의 잠[나희덕]

JOOFEM 2007. 5. 29. 21:48

 

 

 

 

 

 

못 위의 잠[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하는

못 하나 , 그 위의 잠

 

 

 

 

 

* 경제적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일 수 없을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흙 속에 저 바람속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이 마치 흙먼지가 눈에 들어간 양 바람을 탓하리라.

   나의 청년기에 술을 마시는 날이면 안암동에서 장위동까지 걸어서 집에 갔다.

   아버지에게 술취한 아들의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때문이다.

   한시간쯤 걸으면 대충 취기를 면할 수 있었다.

   종암동시장앞을 지날 때면 왠 흙먼지가 바람에 날렸던지

   눈물 흘리시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학교를 마칠 즈음에 끝내 아버지는 세상을 뜨셨고

   장례를 치르고 처음 학교가던 161번 버스 안에서

   그것도 동덕여대 지나고 종암동으로 좌회전할 때 왜그리 눈물이 쏟아지던지.

   지금은 못박힌 아버지의 삶이 고스란히 나에게 박혀서

   나도 바람을 탓하며 아이 셋의 뒤를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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