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음보[황인숙]
노래방에서
누군가 아주 느린 곡조의 가요를 노래하면
따라 듣기에만도 나는 진땀이 난다
내게는 그가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불러낸다고 느껴진다
저 힘!
가창력이라기보다 저 정신력!
말하자면, 저력!
다시 말하자면 가창력!
장식음과 바이브레이션
모음의 젖과 꿀이 넘쳐흐르네
나는 간신히 음표에 올라앉았다
음과 음 사이의 거리가
내게는 항시 아득하여
나는 총총히 노래했다
짤딸막한 모음의 나의 노래여
내 노래는 언제나 단조로웠다
* 직장생활을 시작한 게 일천구백팔십육년 팔월.
직장동료들과 야유회를 가면 노래를 불러야 했다.
노래를 안부르면 장가를 못간다나 악담을 해대었지만
내가 아는 건 애국가 일절부터 사절까지였다.
몇번이고 쩔쩔매다가 생각해낸 건 서유석의 '가는 세월'의 가사를 다 외운 거다.
몇년 잘 써먹었는데 언젠가부터 노래방이 하나둘 생기더니
웬만하면 다들 가수가 되었다.
나의 경우엔 직업이 사람을 대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터라
같이 식사하고 놀아주는 일도 포함되어 있어서
울산이나 광주에 출장갈 때는 차에서 '왁스'의 노래를 틀어놓고
열심히 연습을 하고 실전(?)에 임해야 했다.
지금은 왁스의 머니,화장을 고치고,오빠등을 제법 부르고
클론의 초련이나 채정안의 편지도 부를 줄 안다.
분위기를 살리는덴 최고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음표위에 올라 앉았던 내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힘입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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