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칼[정영선]
마음을 척척 재단해주는 만능의 칼 하나 그대에게 선물하
고 싶다. 호주머니 밑바닥에 조금 묵직하게 자리잡아 언제 어
디서나 그대 날아가려는 마음을 가볍게 눌러주며 그대 잘 꾸
는 풋사과 같은 헛꿈일랑 어디서나 줄칼로 딱 쪼개어보라고.
사과 살 속같은 어둠 속에서 혼자 키우는 예감일랑 햇빛 속
에 화들짝 드러내어 그 사과씨처럼 얼마나 설익었는가를 그
대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그래서 줄회칼로 빗나가는 예
감의 살 속을 도려내라고. 수액 없이도 한없이 자라서 온 머
리에 뿌리를 내리는 헛꿈은 헛발을 디디게 하는 법. 가끔 헛
발질에 넘어져 뚜껑 닫고 들어앉은 마음일랑 흔들어 흔들어
열 수 있는 따개까지 부착된, 봄바람 따라 풀린 마음도 나사
로 꼭꼭 조여주는 언제 어디서나 만능인 공구 하나 그대에게
선물하고 싶다.
* 언제 어디서나 나의 친구가 되어주는 맥가이버칼.
답답하거나 마음문이 닫히거나
혹은 슬프거나 외롭거나 그럴 때
쑤시고 돌리고 열고 자르고
장난감 아닌 것이 마치 장난감처럼
기쁨도 주고 사랑도 주는 맥가이버칼.
아마도 집안 구석에 맥가이버칼 하나쯤 다 있을 게다.
없다면 마음에라도 맥가이버칼을 품을 일이다.
그게 내 친구와 같은 소중한 선물인 까닭이다.
맥가이버칼은 역시 스위스 게 제일이다.
마데인차이나는 차이나기 때문이다.
오, 나의 친구 맥가이버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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