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김혜순]
귀신들은 언제나 투덜투덜, 그래요
그중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여자들이 제일 시끄럽죠
첫사랑에 빠진 귀신은 의외로 추적추적 조용하게 오고요
미친 여자 귀신은 조금 무섭게 오죠
머리칼에 번개가 붙어 오니까요
호수는 그렇게 세게 두들기면 안 돼요
두드린 자리마다 핏물이 올라와요
입에서 지렁이가 나오는 저 여자
너무 두들기진 마세요
매일매일 두들겨 맞으니까 입에서
지렁이가 한 가마니 두 가마니 쏟아지잖아요
나중엔 제 내장까지 꺼이꺼이 다 토하고
빈 몸으로 뭉개지네요
냄새 한번 요란하네요
숲속에서 산 귀신에게 당해보았나요?
입속에서 한없이 뻗어나오는 넝쿨을 꺼내
넝쿨마다 푸른 혓바닥 주렁주렁 매달아
그 혀들이 밤새도록 떠들게 하더라니까요
귀신들은 참 질기게 시끄러워요
갔다가 돌아오고 쫓아내도 찾아오고
제삿날 온 집안에 퍼지는 연기처럼
투덜투덜 침방울 천지에 튀긴다니까요
호수가 수천 개의 입을 벌려 떠들기 시작했어요.
이제 누가 저 벌건 입술들을 틀어막지요?
아이구 천지 사방이 호수네요 벌겋네요
* 잃을 것 다 잃고 토할 것 다 토하고
더는 잃을 것도 더는 토할 것도 없을 때
꺼이꺼이 우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슬픈 눈으로 입술 굳게 다문 채
벌건 황톳물에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보내고
속으로 속으로만 꺼이꺼이 우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지금도 어느 장맛비 속에서
철퍼덕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꺼이꺼이 울고 있을 여자를
빗속의 여인이라 부른다.
시끄러워 죽겠네! 빗속의 여인.
슬퍼서 죽겠네! 빗속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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