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강수님이 찍은 사진입니다.
참 긴 말[강미정]
일손을 놓고 해지는 것을 보다가
저녁 어스름과 친한 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저녁 어스름, 이건 참 긴 말이리
엄마 언제 와? 묻는 말처럼
공복의 배고픔이 느껴지는 말이리
마른 입술이 움푹 껴져 있는 숟가락을 핥아내는 소리 같이
죽을 때까지 절망도 모르는 말이리
이불 속 천길 뜨거운 낭떠러지로 까무러지며 듣는
의자를 받치고 서서 일곱 살 붉은 손이
숟가락으로 자그락자그락
움푹한 냄비 속을 젓고 있는 아득한 말이리
잘 있냐? 병 앓고 일어난 어머니가 느린 어조로
안부를 물어오는 깊고 고요한 꽃그늘 같은 말이리
해는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와서
저녁 어스름을 다 꺼뜨리며 데리고 가는
저 멀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집
괜찮아요, 괜찮아요 화르르 핀 꽃처럼
소리없이 우는울음을 가진 말이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저녁 밥상 앞
자꾸 자꾸 자라고 있는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는
엄마 언제 와? 엄마, 엄마라고 불리는 참 긴 이 말
겨울 냇가에서 맨손으로 씻어내는 빨랫감처럼
손이 곱는 말이리 참 아린 말이리
* 저녁어스름, 하면 박목월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진다.
자주 쓰다듬던 시어인 까닭이다.
낭만처럼 보이지만 저녁이 가져다 주는 아늑함은
사실은 모든 걸 내려놓고 화악 풀어진 채
떠나야할 때를 아는 知天命이 되는 게다.
시간은 너무 짧아요, 비명을 지르면서도
말은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릿느릿 느려만 간다.
저녁밥 한상 잘 차려먹고
긴 긴 밤에 내 얼골을 들여다 보리,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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