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무덤 [김영태]
- 金洙暎 祭日에
6월 16일 그대 祭日에
나는 번번이 이유를 달고 가지 못했지
무덤이 있는 언덕으로 가던
좁은 잡초길엔 풀꽃들이 그대로 지천으로 피어 있겠지
금년에도 나는 생시와 같이 그대를 만나러
풀꽃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대신에 山 아래 사는
아직도 정결하고 착한 누이에게
詩集 한 권을 등기로 붙였지
{客草}라는 몹쓸 책이지
상소리가 더러 나오는 한심한 글들이지
첫 페이지를 열면
그대에게 보낸 저녁 미사곡이 나오지
표지를 보면 그대는 저절로 웃음이 날 꺼야
나같은 똥통이 사람되 간다고
사뭇 반가워할 거야
물에 빠진 사람이 적삼을 입은 채
허우적 허우적거리지
말이 그렇지 적삼이랑 어깨는 잠기고
모가지만 달랑 물 위에 솟아나 있거든
머리칼은 怯먹어 오그라붙고
콧잔등엔 기름칠을 했는데
瞳孔아래 파리똥만한 點도 찍었거든
국적없는 道化師만 그리다가
요즘은 상투머리에 옷고름
댕기, 무명치마, 날 잡아잡수
겹버선 신고 뛴다니까
유치한 丹靑색깔로
붓의 힘을 뺀 題字보면
그대의 깊은 눈이 어떤 내색을 할지
나는 무덤에 못가는 멀쩡한 四肢를 나무래고
침을 �고 송곳으로 구멍을 낸다우
간밤에는 바람소리를 듣고
이렇게 시든다우
꿈이 없어서
꿈조차 동이 나니까
냉수만 퍼 마시니 촐랑대다 지레 눕지
머리맡에는 그대의 깊고 슬픈 시선이
나를 지켜주고 있더라도 그렇지
싹수가 노랗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어떠우
* 金洙暎의 祭日에 가지 못한 게 미안해서 아예 그를 따라 갔을까?
차곡차곡 그려대고 써내려갔던 시와 글들이
저 멀리 있는 무덤가에 노래가 되고 배경이 되어
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이제 더이상 그림도 시도 노래도 보고 들을 수 없지만
묘비명이 떡허니 버티고 서서
재능많은 한 시인의 성실함을 찬미한다.
새 무덤가에 시집 한 권 들고 서있는 여인이 김영태시인을 찾느라
두리번거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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