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식당의자[문인수]

JOOFEM 2007. 10. 13. 21:09

 

 

 

 

식당의자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 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이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 밥을 먹는 곳, 아니 사랑을 하는 곳,

  사랑하는 사이라야 함께 밥을 먹으니 식당은 성스러운 곳.

  그 곳에서 내가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다니 이 의자는 내 여자인가?

  내 여자는 속을 다 파내고 편안한 의자가 되어 있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椅子[조병화]  (0) 2007.10.18
가지 않은 길[프로스트]  (0) 2007.10.17
동행[서정춘]/너에게[서정춘]  (0) 2007.10.13
사랑의 거처[김선우]  (0) 2007.10.09
개에게 사죄함[김대규]  (0) 200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