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椅子[조병화]

JOOFEM 2007. 10. 18. 22:55

 

 

 

 

 

 

 

 

 

椅子[조병화]

 

 

 

 

1

그 자릴 비워 주세요

누가 오십니까

"녜"

 

그 자릴 비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가 오십니까

"녜"

 

그 자릴 비워 주시면 쓰겠습니다

누가 오십니까

"녜"

 

그 자릴 비워 주셨으면 합니다

누가 오십니까

"녜".

 

2

그렇습니다

이 자린 저의 자린 아니오나

아무런 생각없이

잠시 있는 자리

떠나고 싶을 때 떠나게 하여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 자린 저의 자린 아니오나

아무런 딴 생각없이

잠시 머물고 있는 자리

떠나고 싶을 때 떠나게 하여주십시오

 

미안합니다

이 자린 저의 자린 아니오나

떠나고 싶을 때 떠나게 하여주십시오.

 

3

來日에 �기면서

지금 내가 아직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어제 들이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時間의 宿所를 더듬으며

지금 내가 아직 생각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건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의 어제 들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차례에 쫓기면서

지금 내가 아직 생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의 어제 들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4

가을마다 이 자리에 돌아오는 건

무언가를 이 자리에 잊은 거 같은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가을마다 이 자리에 돌아오는 건

먼 자리 가다

무언가를 이 자리에 두고 온 거 같은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봄,여름,겨울,멀리

혼자 가다

 

가을마다 이 자리에 돌아오는 건

무언가를 이 자리에 잊은 거 같은

생각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5

떠나야 할 시간이오나,아직

떠나지 못하옵는 건

"來日?"

어디라 장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어서야 할 시간이오나,아직

일어서지 못하옵는 건

"來日?"

어디라 장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비워야 할 이 자리,시간이오나,아직

비우지 못하옵는 건

"來日?"

어디라 장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6

시간은 마냥 제 자리에 있는 거

실로 변하는 건

움직이는 것들이다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 우리 이 자리에 없으려니

 

시간은 마냥 제 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건

사람뿐이다

 

시간에 집을 지으라

생각에 집을 지으라

 

시간은 마냥 제 자리에 있음에

실로 변하는 것은

"오고 가는 것"들이다.

 

7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椅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椅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椅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8

보이는 자리엔,낙서를 하지 말자

"옛날에 어느 분이 이 椅子에......"하고

나를 찾을 때

-그 생각 속에 있자

 

보이는 그 자리엔, 낙서를 새기지 말자

"옛날에 어느 분이, 이 椅子에......"하고

나를 찾을 때

-그 생각 속에 있자

 

보이는 자리엔,낙서를 하지 말자

"옛날에 어느 분이, 이 椅子에......"하고

나를 찾을 때

-그 생각 속에 있자.

 

 

 

9

인사말을 이야기 하기엔 너무 어림에

옛날 어느 분이 내게 한 말이

"이 자릴 사랑하라"

 

인사말을하기엔 너무 어림에

오늘 내가 오는 분께 할 말이

"이 자릴 사랑하라"

 

인사말을 이야기 하기엔 너무 어림에

옛날 어는 분이 내게 한 말이

"너를 위해 너를 이야기 하지 말라"

 

인사말을 하기엔 너무 어림에

오늘 내가 오는 분께 할 말이

"너를 위해 너를 이야기 하지말라".

 

10

가을 公園에

빈 椅子 하나 놓여 있다

 

나뭇잎이 떨어짐에

먼 고요함

 

가을 公園에

빈 椅子 하나 놓여 있다.

 

 

 

 

* 가을이 정말 가을 같아서 빈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란 소설책 한권 읽으며

  그냥 편안한 마음이 되어 의자에 앉아 쉬고 싶다.

  요즘은 왜 이리 피곤한지 일터에서 깜박깜박 졸음이 온다.

  봄도 아닌데 편안한 잠을 그리워 한다.

  하늘 쳐다볼 시간도 없는데 어떤 여자가 "하늘이 맑아서 전화했어요."한다.

  그래, 바람 한 점도 좋고 구름 한 점도 좋은 가을에 그냥 아무 이유없이 빈 의자에 앉아

  쉬고 싶구나. 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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