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진다는 것[나희덕]
5시44분의 방이
5시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하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 눈이 부시게 푸르렀던 그 때,
우리는 젊음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지만
세월은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고
어두워진다는 건
우리의 몸과 마음까지도 어둡게 한다는 진실을 알게 해주는 것
다만 우리는 이 어두운 골방에서
영혼만은 명료하며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
그 것 하나만으로 삶을 위로받고 있다.
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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