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지문[권혁웅]

JOOFEM 2007. 11. 19. 20:02

 

 

 

 

 

 

 

지문 [권혁웅]

 

 

 

 
 


내가 모르는 일이 몇 가지 있으니
바위에 뱀 지나간 자리와 물 위에
배 지나간 자리와 하늘에 독수리가 지나간 자리
그리고 여자 위에 남자가 지나간 자리*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도무지 모르지, 손가락마다
소용돌이를 감추어두고 사는 일
손잡을 때마다 타인의 격정에 휘말리는 일
내 삶의 알리바이가 여기에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개들은 짖고
먼지는 손에 묻고
버스는 떠나고
비행기는 하늘에 실금을 그으며 날아간다

 

나는 개를 먹고 개처럼 짖고
개털은 날리고 나를 따라
먼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내가 손을 흔들어도
버스는 떠나가고 비행기는 활주로에
길고 긴 타이어자국을 남긴다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리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면
네가 누워 있었을 것이다

 

 

* 잠언 30:19
** 양희은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

 

 

 

 

 

 

 

 

*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 흩어진 머릿카락,

  여기에 내가 아니었다면

  네가 누웠을 테고

  그것이 운명이라면

  내가 되었든 네가 되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도무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니

  장난치는 운명의 여신에게 말해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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