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광에 고인 그리움[권혁웅]
서울시 성북구 삼선동 산 302번지
우리 집은 십이지장쯤 되는 곳에 있었지
저녁이면 어머니는 소화되지 않은 채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귀가하곤 했네
당신 몸만한 화장품 가방을
끌고, 새까맣게 탄 게
쓸개즙을 뒤집어 쓴 거 같았네
야채나 생선을 실은 트럭은 창신동 지나
명신초등학교 쪽으로만 넘어왔지
식도가 너무 좁고 가팔랐기 때문이네
동네에서 제일 위엄 있고 무서운 집은
관 짜는 집,
시커먼 벽돌 덩어리가 위암 같았네
거기 들어가면 끝장이라네
소장과 대장은 얘기할 수도 없지
딱딱해진 덩어리는 쓰레기차가 치워갔지만
물큰한 것들은 넓은 마당에 흘러들었네
넓은 마당은 방광과 같아서
터질 듯 못 견딜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짐을 이고지고 한꺼번에 그곳을
떠나곤 했던 것이네
* 어릴 때, 어머니는 이 것 저 것 장사를 하셨다.
한 때는 화장품가방을 들고 다니며 화장품을 팔았다.
스킨로션이 하는 역할이 모공을 자극해 줄여주고
그 위에 다른 화장품을 바른다는 걸 초등학생인, 그것도 남자인 내가 알만큼
어머니의 화장품파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다.
평생을 그리 사셨는데
쓸개관에 몹쓸 병이 생겨 지금은 딱딱해진 간과 쓸개관을 손으로 문지르며
낫겠지,하며 기다리고 계신다.
곧 가난을 면하고 가난이 없는 곳으로 가시겠지만
오늘은 한복입고 언니의 손주 결혼식을 가신다.
잔치상에 어머니가 드실 수 있는 음식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서울로 결혼식장엘 간다. 나도 어머니의 손녀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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