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유홍준]
벤자민과 소철과 관음죽
송사리와 금붕어와 올챙이와 개미와 방아깨비와 잠자리
장미와 안개꽃과 튤립과 국화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죽음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며
죽음을 신기해 하는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의 처참함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아내는 화장술이 늘어가는 삼십대가 되었다
바람도 태양도 푸른 박테리아도
희망도 절망도 욕망도 끈질긴 유혹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별일 없냐
별일 없어요
행복이란 이런 것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
죽음을 집 안으로 가득 끌어들이는 것
어머니도 예수님도
귀머거리 시인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 유홍준님의 '상가에 모인구두들'이란 시집을 카페친구가 선물로 사주었다.
국어선생님답게 이 시집에서는 이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가 대표작이라 일러 주었다.
시험에라도 나오는 것인 양 밑줄을 좌악 그어 준 셈이다.
나는 모범생답게 이 시만 계속 들여다 보고 조그맣게 읊조리기도 했다.
그나마 이 시는 따뜻함이 있는 시였다.
** 생명을 가진 것들이 내게로 와서 함께 산다는 것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마침내는 죽음과 이별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죽음에 익숙해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죽음을 옆에 두고도 행복을 느끼고 살아 간다.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내 집에서 죽는다.
그리고 빈집에서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 간다, 아니 살아 낸다.
*** 관음죽은 정말 잘 안 죽는 건데도 죽는다니
죽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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