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사라지지않는,[김행숙]
더 휘저어라. 나는 충분히 섞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 못한 알갱
이처럼 남아 있어서 목에 걸리고
길고 외로운 팔을 욕조 밖으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당신의 목
욕시간은 너무 길어, 당신은 소리치는 것이다.
아주 길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소리치는 것이다. 식
사시간보다 목욕시간이 더 길어지면 긴 것, 연약한 것, 갈 곳
없는 것,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극단적인 기침이 어디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아닌 것처럼 구부리고
구부렸다, 폈다, 구부리는 운동 속에서 나는 계속되지 않는다.
나는 불연속적으로 사람들 속으로 사람들을 떠난다.
* 커피물에 설탕을 집어넣는다.
백도씨의 물이 설탕의 융해열을 빼앗겨 칠십도씨가 된다.
이 때 찻숟가락으로 교반을 해주어야 한다.
박목월시인의 표현으로는 투신한 설탕이 사록사록 녹는다,했다.
잘 저어도 그래뉼라가 그대로 남아 목에 걸린다.
잘 젓는다는 것, 잘 섞인다는 것,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칠십도씨의 커피가 입술을 데지 않게 하는 적당한 온도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설탕은 사라진 것 같아도 사라진 것은 아니듯
사람들도 사라진 것 같으나 사라진 게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설탕과 같아서 맛있는 커피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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