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라지는,사라지지않는,[김행숙]

JOOFEM 2008. 4. 5. 20:48

 

 

 

 

사라지는, 사라지지않는,[김행숙]

 

 

 

 

 

  더 휘저어라. 나는 충분히 섞이지 않았다. 나는 생각 못한 알갱

이처럼 남아 있어서 목에 걸리고

 

  길고 외로운 팔을 욕조 밖으로 늘어뜨리는 것이다. 당신의 목

욕시간은 너무 길어, 당신은 소리치는 것이다.

 

  아주 길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소리치는 것이다. 식

사시간보다 목욕시간이 더 길어지면 긴 것, 연약한 것, 갈 곳

없는 것,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극단적인 기침이 어디서 터져나오는 것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람 아닌 것처럼 구부리고

 

구부렸다, 폈다, 구부리는 운동 속에서 나는 계속되지 않는다.

나는 불연속적으로 사람들 속으로 사람들을 떠난다.

 

 

 

 

 

 

 

 

 

* 커피물에 설탕을 집어넣는다.

백도씨의 물이 설탕의 융해열을 빼앗겨 칠십도씨가 된다.

이 때 찻숟가락으로 교반을 해주어야 한다.

박목월시인의 표현으로는 투신한 설탕이 사록사록 녹는다,했다.

잘 저어도 그래뉼라가 그대로 남아 목에 걸린다.

잘 젓는다는 것, 잘 섞인다는 것,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칠십도씨의 커피가 입술을 데지 않게 하는 적당한 온도인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설탕은 사라진 것 같아도 사라진 것은 아니듯

사람들도 사라진 것 같으나 사라진 게 아니다.

우리의 영혼은 설탕과 같아서 맛있는 커피가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