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다년생 화초[박이화]

JOOFEM 2008. 5. 10. 19:30

                                                                                                           김경자

 

 

 

 

다년생 화초[박이화]

 

 

 

 

 

 

마음을 비울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반생이 걸렸다.

한쪽 눈만 감아도

원근이 달라지는 일이나

무심코 할퀸 손톱자국에

밤새도록

수억의 신경다발 뜬 눈으로 욱신거리던 일들

알고 보니

몸이 마음에게 보낸 절절한 위로

왜 몰랐을까?

사랑니 하나 빠져

잇몸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걸

살점 한 조각 떨어져 나가

이렇듯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몰리는데

어쩌자고

나는 너를 송두리채

뽑아버리려고만 했을까?

그 캄캄한 빈 자리

종양같은 검은 미움 꽉 들어차면 어쩌려고

 

오랫동안 시름시름

밑둥부터 썩어 들어가는 다년생 화초,

나는 끝내 뿌리 뽑지 않는다

내 몸이 마음을 달래며 그랬던 것처럼

 

 

 

 

 

 

 

 

* 일년생 화초와의 결별은 슬프지 않습니다.

일년생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기때문입니다.

다년생 화초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기쁨을 주었기에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습니다.

허나 나 몰래 밑둥부터 썩어들어가는 걸 몰랐습니다. 

줄기 끄트머리가 뎅강 잘려나갈 때까지 몰랐던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사랑을 주기만 하면 오래도록 살아서 꽃을 피워주는 줄 알았습니다.

안녕, 다년생 화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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