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
다년생 화초[박이화]
마음을 비울 수 없다는 걸 아는데
반생이 걸렸다.
한쪽 눈만 감아도
원근이 달라지는 일이나
무심코 할퀸 손톱자국에
밤새도록
수억의 신경다발 뜬 눈으로 욱신거리던 일들
알고 보니
몸이 마음에게 보낸 절절한 위로
왜 몰랐을까?
사랑니 하나 빠져
잇몸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걸
살점 한 조각 떨어져 나가
이렇듯 온 몸의 피가 거꾸로 몰리는데
어쩌자고
나는 너를 송두리채
뽑아버리려고만 했을까?
그 캄캄한 빈 자리
종양같은 검은 미움 꽉 들어차면 어쩌려고
오랫동안 시름시름
밑둥부터 썩어 들어가는 다년생 화초,
나는 끝내 뿌리 뽑지 않는다
내 몸이 마음을 달래며 그랬던 것처럼
* 일년생 화초와의 결별은 슬프지 않습니다.
일년생이라는 걸 알고 시작했기때문입니다.
다년생 화초는 해마다 꽃을 피우고 기쁨을 주었기에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습니다.
허나 나 몰래 밑둥부터 썩어들어가는 걸 몰랐습니다.
줄기 끄트머리가 뎅강 잘려나갈 때까지 몰랐던 걸 후회해봐야 소용없었습니다.
사랑을 주기만 하면 오래도록 살아서 꽃을 피워주는 줄 알았습니다.
안녕, 다년생 화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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