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관계 혹은 사랑[이재무]
못 박는다 벽은 한사코, 들어오는
막무가내의 순애보 밀어내고 튕겨낸다
그러나 망치 잡은 두툼한 손의 고집
벽은 끝내 막을 수 없다
일자무식하게 꽝꽝 박을 때마다 진저리치는
벽, 아주 인색하게 몸 열어 관계 받아들인다
단단한 살 헤집어 가까스로 뿌리내린 자의
저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보라
벽은 못 품고 살아간다
들어올 때 아파서 울던 울음 뒤
생긴 상처 아물면서
못은 비로소 벽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못은 벽 떠날 날 올지 모른다
그날의 벽은 이제 제 안 깊숙이 박힌
사랑 내주지 않으려 끙끙 앓으며
또 한 번 검붉은 녹물의 설움 질질 짜낼 것이다
* 가까스로 뿌리내린 자의 표정이 결코 단호하거나 득의에 찬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망갈 수 없이 꽉 붙들린 채 떠날 것을 염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혹은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연스런 욕망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스스로 구속된다는 거다.
자연스런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건가,
아니면 자연스런 욕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건가는
순전히 마음안에 있는 나를 잘 제어할 수 있을 때
진정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얻을 것이다.
관계 혹은 사랑을 통해서 상처를 얻기도 하고 치유함을 받기도 한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똥 몇 점[장석주] (0) | 2008.06.13 |
---|---|
여름 저녁2[정현종] (0) | 2008.06.13 |
사막의 여우[김혜원] (0) | 2008.06.07 |
난 건달이 되겠어[장석주] (0) | 2008.06.05 |
고시원은 괜찮아요[차창룡] (0) | 2008.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