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관계 혹은 사랑[이재무]

JOOFEM 2008. 6. 9. 22:28

 

                                                                                                        유영국

 

 

 

 

 

 

관계 혹은 사랑[이재무]

 

 

 

 

못 박는다 벽은 한사코, 들어오는

막무가내의 순애보 밀어내고 튕겨낸다

그러나 망치 잡은 두툼한 손의 고집

벽은 끝내 막을 수 없다

일자무식하게 꽝꽝 박을 때마다 진저리치는

벽, 아주 인색하게 몸 열어 관계 받아들인다

단단한 살 헤집어 가까스로 뿌리내린 자의

저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보라

벽은 못 품고 살아간다

들어올 때 아파서 울던 울음 뒤

생긴 상처 아물면서

못은 비로소 벽의 일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못은 벽 떠날 날 올지 모른다

그날의 벽은 이제 제 안 깊숙이 박힌

사랑 내주지 않으려 끙끙 앓으며

또 한 번 검붉은 녹물의 설움 질질 짜낼 것이다

 

 

 

 

 

 

 

* 가까스로 뿌리내린 자의 표정이 결코 단호하거나 득의에 찬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망갈 수 없이 꽉 붙들린 채 떠날 것을 염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혹은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연스런 욕망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스스로 구속된다는 거다.

자연스런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건가,

아니면 자연스런 욕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건가는

순전히 마음안에 있는 나를 잘 제어할 수 있을 때

진정 단호하고 득의에 찬 표정을 얻을 것이다.

관계 혹은 사랑을 통해서 상처를 얻기도 하고 치유함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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