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시원문학동인회 제7집

JOOFEM 2008. 12. 6. 17:06

 

 

 

 

 

 

* 내 팀에는 사무실 열네명, 현장 스물세명이 같이 근무한다. 내 팀은 생산을 기획하고 물류를 담당하는 업무를 한다.

그 중 유일하게 시를 쓰는 동료가 한 명 있다.

물류용기를 보수하는 일을 하는 동료인데 오래전부터 시를 써왔고 틈틈이 동인지에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어제는 나를 만나러 일부러 왔길래 무슨 고충이 있어서 상담을 하러 왔나 했더니 동인시집 한 권을 내민다.

이번에 제7집이 나왔다며 시를 좋아하는 내게 준다는 거다.

찬찬이 읽을 여유는 없고 잠깐 훑어보고 격려의 말 한마디 해주고 나중에 등단도 하라고 덕담도 해주었다.

시원문학동인회의 제7집에 실린 시 몇 편을 올린다.

 

 

 

 

 

의자[최재영]

 

 

아파트 노인정 앞

여러 개의 나무의자가 놓여있다

노인들 오가는 길 수시로 앉았다 가곤 하여

듬성듬성 이가 빠진 의자는

맑은 날에도 잔기침을 내뱉는다

비바람 주저앉아 반질해진 바닥

가만 손을 얹어보니

오래 전 떠나온 숲 속의 오솔길과

새들의 노래가 촘촘하게 돋아나와

실금처럼 퍼져가는 나뭇가지들

몸 안 가득 잔잔한 파문이 퍼져간다

의자를 밀고 당기며

바람 술렁이는 정수리 환하게 피워내는 노인들

궁둥이 철썩 붙이고 앉아

쪼글거리는 입이 하루종일 하느작거리고

크고 작은 옹이가 박힌 곳마다

연푸른 뼈마디가 툭,

삐걱이는 자음과 모음들

어느 계곡을 향해 가는 것일까

더운 숨결을 훅훅 내뿜으며

점점 더 깊어지는 옹이들

 

 

 

 

꽃을 꺾으려다[김용만]

 

 

꽃을 좋아 했습니다

다가가 힘껏

가지를 잡았습니다

 

순간

암술과 수술의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기억의 한편을

남겨두고 돌아섰습니다

문득 그리워 갔을 때

그 자리엔

씨앗이 생겼습니다

 

 

 

 

십이월이 헐린다[한인숙]

 

 

담벼락 전봇대,후미진 골목까지

쥐꼬리 한해를 한 장 남은 달력이 점거하고 있다

공장부도 왈칵 세일에서 나이트클럽 출연자의 낯익은 표정까지

얼마 남지 않은 호객의 날들을 불법광고물이 점거하고 있다

이제 낱장의 달력 가지곤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꿈꾸기가 힘들다

단속을 벗어난 간판들이 눅눅한 미끼를 던지고

환불되지 않는 허영의 안쪽을 걸어나온

한 여자가 결재불능의 날들 속으로 비척거리기도 하는,

어차피 이곳은 미약한 환상으로부터 걸어나와

쓸쓸한 파경에 이르는 달력 속의 날들이기 때문이다

십이월이 헐린다

세상에서 겨우 살아남은 한 칸의 날짜들이 헐리고 있다

선술집을 빠져나온 사내의 넋두리가 한 장 남은 경부선 기적소리에 뜯겨지고

전당포

희미한 불빛을 핧던 고양이의 소름이한 장 남은 불경기에 사각 베어 물린다

골목 입구 신축의 골조 밑에서 추운 모닥불을 뜯어내고 있는 사람들

한순간 공복이 헐리고 헐린 공복을 메꾸며

십이월의 귀가가 천천히 저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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