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백
안녕, 여보![정끝별]
삼십년을 한 여자와 희희낙락 살 맞대고 살다
삼십년을 한 여자와 티격태격 지지고 볶고 살다
삼십년을 공중부양하듯
삼십년을 산 집으로부터 홀연 이륙하며
삼십년을 향해 달랑 편지 한장 남겼다지
단 두 마디 남기고 날라버렸다지
안녕, 여보!
남겨진 단 두 마디 때문에
남겨진 여자 허겁지겁 날아다니며
나흘 만의 남자 동해안 민박집에서 체포해 왔다지
다시 삼십년을 기약하며 잘살고 있다지
안녕, 여보!
변명 없는 단 두 마디
안녕, 여보!
비난도 없는 단 두 마디
두 마디 넘겼다면 지금쯤 남 되었을 거라지
아니, 여보!대신
안돼, 여보!대신
상쾌한 단 두 마디
장쾌한 단 두 마디
안녕, 여보!
* 어떤 종교에서는 남녀를 짝을 지어주고 합동 결혼식을 한다고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짝을 지어준다는 말이다.
그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관계없이 일견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교리는 대개 '서로 사랑하라' '평생 사랑하라' 혹은 '원수를 사랑하라'일거고
그러니 생판 모르는 사람을 원수같을지라도 평생 사랑하며 살아야 할 테다.
삼십년을 지지고 볶고 살았다면 알 건 다 알테지만 사람은 다 알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그 때 그 때 달라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보, 안녕!하고 날라버리는 거다.
다시 시작하는 삼십년은 그래서 아름답다.
그러니 지나간 삼십년을 변명하지도 말고 비난도 하지말라.
그 삼십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삼십년마다 이렇게 하직 인사를 하자.
안녕,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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