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스크랩] 서평-김혜원 시집『물고기 시계』

JOOFEM 2008. 12. 16. 22:20

 

나비와 손의 서정

ㅡ김혜원 시집 『물고기 시계』(시로여는세상)

 

이 경 호(문학평론가)

 

 

 

   김혜원이 오랜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비 개인 오후」였다. 무엇보다도 “호박꽃 깊숙이 든/나비 한 마리”의 정체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비 잠깐 그친 사이

어느 햇살로 피웠는지 넝쿨마다 한창인

뒤란 호박꽃 깊숙이 든

나비 한 마리

 

순식간에 비 다시 쏟아지고

모로 누워 잠든 나비,

양철 지붕이 왁살스레 흔들어도

기척이 없다

 

한 뼘 땅을 파고 묻은 화관에

호박잎 몇 닢 따 덮은

비 개인 오후,

무엇에 찔렸는지

저녁 내 손이 따갑다

ㅡ「비 개인 오후」전문

 

   “나비 한 마리”의 정체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시의 화자가 “저녁 내 손이 따갑다”고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이 정황은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실적인 맥락도 갖추고 있을뿐더러 사실적인 맥락을 발판으로 보다 중요한 삶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실적인 맥락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 나절에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비를 피해 나비 한 마리(아마도 노랑나비였지 싶다)가 노란 호박꽃으로 날아든다. 소나기가 다시 쏟아지자 그 나비는 그곳에서 생을 마치고 시의 화자는 나비와 함께 호박꽃과 잎을 묻어준다. 그런데 그 일을 마치고 나서 “손이 따갑다”. 여기까지가 시의 문맥으로 유추된 사실적 정황이다. 그런데 왜 “손이 따”가울까? 여기에서부터 시인은 우리에게 현실의 정황과 연결된 추억의 맥락을 환기시킨다. “손이 따”가운 현실의 정황은 “호박잎 몇 닢 따 덮은” 행위에서 비롯된 듯하다. “호박잎”에는 미세한 가시털이 줄기 부분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그러한 증상의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이 따갑다”고 느끼는 증상은 육체의 증상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증상인 듯하다. 즉 “나비 한 마리”의 죽음이 시의 화자에게 어떤 삶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을 법하다. 손의 ‘따가움’이 마음의 ‘따가움’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따가움’을 불러 일으키는 과거의 추억은 무엇일까? 그 추억을 찾아내기 위하여 우리는 시집의 1부에 함께 수록된 다음의 시편을 읽어보아야 한다.

 

아가의 앞니에 꼭꼭 물려

피가 배인 앞섶을 수줍게 감추던

아낙의 다섯 번째 계절은

궂은 날에도 솔내음이 났다

 

장터에서 걸음마를 배운

민들레를 닮은 아기,

아기가 잠이 들던 검정 우산 속

등 굽은 아낙의 가슴이 비었다

 

찢어진 우산 틈으로 든

햇살 한 조각

나비처럼 아낙의 등에 앉아

노다 가는 저물 녘,

마지막 계절에서 쑥내음이 난다

ㅡ「노랑나비」전문

 

   이 작품에서 “나비”와 하나로 포개지는 대상은 “아기”이다. 노랑나비와 같은 색깔인 “민들레를 닮은 아기”라는 말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동일성의 흔적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비처럼 아낙의 등에 앉아”라는 표현에서 동일성의 자취를 분명하게 찾아낼 수가 있다. 물론 사실적인 문맥으로는 “나비”와 “아기”뿐만 아니라 “햇살”도 동일성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의 시편에서 “모로 누워 잠든 나비”는 이번 시편의 “아기가 잠이 들던 검정 우산 속/등 굽은 아낙의 가슴”을 연상시킨다. “호박꽃”이 “등 굽은 아낙의 가슴”인 셈이다. 이제야 추억의 실마리가 밝혀진다. “나비”의 죽음은 바로 “아기”를 상실한 모성의 추억인 셈이다. “등 굽은 아낙의 가슴이 비었다”고 밝힌 뜻도 그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손의 “따가움”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따가움”은 모성의 상실감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김혜원의 이번 시집은 모성에 대한 확인과 그리움의 시편들로 넘쳐난다. 그녀의 이번 시집은 모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족애와 노동의 일상을 표현하기에 분주하다. 모성에 대한 확인이 무엇보다도 몸의 지체들 중에서 ‘손’의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도 그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비 개인 오후」에서 “손이 따갑다”로 모성의 상실감을 고백했던 마음은 「어머니의 그림자」에서는 “해질 녘, 얼음 박힌 손으로/남포 알의 그을음을 닦아내던 어머니”와 “삯바느질로 밤을 새는 어머니”의 ‘손’이 부려내는 곤고함을 아프게 새긴다. 그 곤고함을 시인은 “어머니의 등뼈를/소리없이 휘어놓”는 장면으로 묘사해보인다. 그런데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곤고함에 머무르지 않는 역동성을 빚어낸다. “등뼈를/소리 없이 휘어놓더니/물먹듯 먹어치운 빛에 체해 금방/죽을 것 같더니/내 던지면 개도 안돌아볼 것이 살아나/어머니를 자꾸 쓰러뜨린다”로 묘사되는 ‘손’이 부려내는 노동의 곤고함은 삶을 무너뜨리면서 일으켜세우고는 다시 쓰러지게 만드는 몸짓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머니의 ‘손’이 빚어내는 이러한 노동의 곤고한 역동성을 시인은 스스로 삶의 일상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놀라운 지혜와 의지를 다음과 같이 선보이기도 한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 손등에 신호가 온다

오늘은 또 어디서 무슨 일인가

이 일 저 일 떠올려도 짚이는 게 없다

그럼, 어제 그 일이 오늘까진가?

저와 나 무슨 긴한 사이라고 손께서는 이리도

자분히 정표를 남기시나

정말이지 숱한 손 중 이 손은 집요하고 고이적다

이런 날은 손이 앉은 자리 쓱-각 베어

밥상 밑에 껌처럼 붙였다가

심사가 편한 날 찰지게 다시 씹어

귀신도 찾지 못할 외진 벽에 아주 붙이고 싶다

손 자리를 영구히 없애버리는 거다

하기사 이 손마저 없었으면 세상은 또

얼마나 고적하고 재미없을 것인가

소리 없이 베인 상처는

누가 알고 달려와 싸매 줄 건가. 그러니 손이여,

오려거든 욱신욱신 화끈하게 오라!

ㅡ「손」전문

 

   ‘손’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상의 곤고함은 “오늘은 또 어디서 무슨 일인가”라는 시행 속에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손’의 곤고함에 대한 마음가짐은 우선은 곤고함을 회피하려는 욕망을 부려내는 듯하다가 오히려 그 곤고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몸짓으로 뒤바뀐다. 그리고 그러한 뒤바뀜을 절실하게 체현해주는 것이 바로 ‘씹던 껌’의 역할이다. 아마도 50대 이상의 세대들은 ‘씹던 껌’을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 붙여놓았다가 다시 씹어야했던 유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바로 곤고한 손의 운명에 그러한 껌의 역할을 부여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은 손이 앉은 자리 쓱-각 베어”에서 우리는 그저 ‘손’의 노동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상의 곤고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화자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을 따름인데, 바로 다음 행의 “밥상 밑에 껌처럼 붙였다가”에서 놀랍게 변화되는 욕망의 운명을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곤고함을 “밥상 밑에 껌처럼 붙”여 놓으려는 의지는 그것을 내치지 않겠노라는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곤고함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버리는 지혜로움의 과시인 셈이다. 더구나 “밥상 밑”이라니. 시인은 생활의 가장 소중하게 되풀이되는 자리에 노동의 곤고함을 초대해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지혜롭게 부려내는 마음가짐은 “하기사 이 손마저 없었으면 세상은 또/얼마나 고적하고 재미없을 것인가”에서 자연스럽게 확인된다.

어머니의 삯바느질에서 딸의 소를 키우는 일로 대물림되고 있는 ‘손’의 곤고한 노동은 무엇보다도 “어머니, 참는 것을 약처럼 여겨 오신 어머니를 참을 수 없던 딸이 이젠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어요”(「꼭 닮았어요」)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손’의 지체가 반드시 그러한 생활의 가치를 떠받치는 일에만 바쳐지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혜원의 이번 시집에서 ‘손’의 존재성은 삶의 보다 근원적인 존재의의를 돌이키게 만드는 계기나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 손에 땀 그만하면

한세월 소리 없이 흐른 그대 강물

창포물인양 머리 감고

붉은 그대 옷 한 자락 베어 내

곱게 빗은 백발에 댕기들이면 안되나요

나 먼저 강 하구로 달려가

핏빛 그대 강물에

문수 작은 내 발 밀어 넣으면 안되나요

산까지 떼로 우는 날

평생을 잠잠했던 그대 가슴에 귀 대이고

강바닥에 흐르는 그대 숨소리

들으면 안되나요, 그때도 말없이

가슴만 열어 보일건가요

ㅡ「노을 댕기」전문

 

   이 작품에서 ‘손’이 감당하는 노동의 곤고함은 인생의 보다 근원적인 가치에 대한 물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시발점을 형성하고 있다. “내 손에 땀 그만하면”에서 우리는 생활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마음가짐을 읽어내게 된다. 노동의 곤고함을 “그대 강물”에 “창포물인양 머리 감”으려는 마음가짐은 자연의 존재성과 소통하려는 의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변의 “노을”이 환기시키는 존재의 비의는 삶의 방향 속에 죽음의 존재마저 포함시켜야 하는 성숙한 세대가 떠올릴 만한 과제이다. 그것은 일상과 인간을 벗어난 자연의 존재 가치를 깨닫거나 그러한 존재성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다. 일상의 필요에 묶여있던 ‘손’의 “땀”을 거두는 자리에서 기약될 수 있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물음을 시의 화자는 “평생을 잠잠했던 그대 가슴에 귀 대이고/강바닥에 흐르는 그대 숨소리/들으면 안 되나요”라고 고백한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일상의 자리에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시인은 지금까지 삶의 일상을 이끌어온 “금이 간 낡은 시계”를 버리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자연의 “큰물”에서 낚아 올릴 수 있는 “금빛 지느러미”로 삶의 새로운 이치와 꿈을 찾아내려는 시인의 마음은 이번 시집의 아름다운 표제시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청태 낀 바위에 미끄러져

금이 간 낡은 시계 큰물에 놓아주고

어망에 걸린

기울어진 달의 남은 조각과

희미한 별 몇 개 거두어 돌아가는

낚시꾼의 손목에

흔들리는 금빛 지느러미,

멈춘 시계바늘을 돌린다

ㅡ「물고기 시계」전문

 

 

 

이경호: 1955년 서울출생, 고려대학교 영문과와 동대학원에서 비교문학 전공.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계간『작가세계』편집주간. 저서에『문학과 현실의 원근법』,『문학의 현기증』,『상처학교의 시인』등이 있다.

 

출처 : 들꽃나라
글쓴이 : 김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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