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까막눈 하느님 [전동균]

JOOFEM 2009. 1. 11. 10:21

 

 

 

 

 

까막눈 하느님 [전동균]

 

 


해도 안 뜬 새벽부터
산비탈 밭에 나와 이슬 털며 깨단 묶는
회촌마을 강씨 영감,


성경 한 줄 못 읽는 까막눈이지만
주일이면 새 옷 갈아입고
경운기 몰고
시오리 밖 흥업공소에 미사 드리러 간다네


꾸벅꾸벅 졸다 깨다
미사 끝나면
사거리 옴팍집 손두부 막걸리를
하느님께 올린다네
아직은 쓸 만한 몸뚱아리
농투성이 하느님께 한 잔,
만득이 외아들 시퍼런 못물 속으로 데리고 간
똥강아지 하느님께 한 잔,
모 심을 땐 참꽃 같고
추수할 땐 개좆 같은
세상에게도 한 잔……


그러다가 투덜투덜 투덜대는
경운기 짐칸에 실려
돌아온다네

 

 

 

 

 

 

* 택시운전을 하는 조씨는 순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도 순박한 것만 물어본다.

한번은 예배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비빔밥이 나왔다.

내 앞에 앉아 이렇게 묻는다.

'비빔밥을 먹을 때는 비비기 전에 기도해야 돼요, 비비고나서 기도해야 돼요?'

소같은 눈망울로 물어보니 대답을 해줄 수 밖에.

'마음 가는대로 기도하세요. 비비기 전에 해도 되고 비비고나서 해도 되고......'

 

믿음도 자기가 아는만큼만 믿으면된다.

내가 까막눈이면 하느님도 까막눈이고

내가 박사이면 하느님도 박사가 된다.

하느님은 융통성이 많으신 까닭이다.

그러니 막걸리 한잔을 기도처럼 올리는 회촌마을 강씨영감처럼 믿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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