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나희덕]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 겨울에 빨래를 널면 버석버석 얼어버린다.
저게 언제 마를까 싶지만 얼면서 말라버린다.
마른 바람이 끊임없이 속삭이고 만지고 짓주무르다 슬쩍슬쩍 말리고 있다.
다 얼어버려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 모르게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게다.
은밀한 교감 끝에 빛나는 비늘같은 그 짓거리, 사랑!
언 강물밑으로도 그 짓거리가 있으니 곧 봄이 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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