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시래기 한 움큼 [공광규]

JOOFEM 2009. 2. 8. 18:01

 

 

 

 

 

 

 

시래기 한 움큼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를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 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 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 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 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줌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찬 유치장 바닥에 뒹굴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 알뜰한 어머니들은 시래기를 말려 겨울이면 시래기국을 끓여주셨다.

지금의 주부들은 시래기를 말리지 않으므로 시래기만 말려 파는 회사가 많이 생겼다.

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래기음식을 사먹는 이들이 많아 회사까지 생긴 게다.

시래기 한 움큼의 냄새란 곧 고향 어머니의 냄새다.

시래기해장국 한 그릇이면 금세 어머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리움을 훔치지는 말고 해장국 한 그릇을 사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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