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껌[김기택]

JOOFEM 2009. 2. 12. 20:18

 

 

 

 

 

 

 

껌[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 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 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 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 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우주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 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 못해 놓아준 껌.

 

 

 

 

 

 

* 씹는 자와 씹히는 자.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갖지 못한 자.

신과 인간.

주인과 종.......

 

한쪽은 당하기만 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버리는 자와 버림받는 자.

껌은 단물을 다 빨리고 버림을 받지만

이빨도 받을 게 없으니 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셈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으로 본다면 쌤쌤이다.

씹는 자는 이빨이 아프다 소리칠 테고

껌은 학대받은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테고 결국은 쌤쌤이다.

 

씹히는대로 씹히다가 마침내는 화석이 되어

고스란히 내것이 되어야 하는 껌같은 운명이 곧 인생이다.

질걸질겅 씹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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