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멸치- 마트에서 [허연]

JOOFEM 2009. 2. 15. 15:52

 

 

 

 

멸치- 마트에서 [허연]

 

 

 

 

 

 

 언젠가 하얀 눈보라처럼 바닷속을 휘저었을 멸치떼가

말라간다. 영혼은 빠져 나갔는데 하나같이 눈을 뜨고 있

다. 죽기 싫었던 멸치가, 사랑의 정점에 있던 멸치가 눈

도 못 감은 채 말라 간다.

 

 말라서 누군가에게 국물이 되는 종말. 그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눈 뜬 놈들이 뒤엉켜 말라 가는 홀로코

스트의 현장에서 한 됫박의 미라와 한 됫박의 국물과 눈

물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저렇게 단순하게 눈물이 되는 걸.

 이제 와서 후회한다 나의 사유가 늘 복잡했던 것을

 내 사랑이 모두 음란했던 것을

 

 끔직한 결과들로 뒤덮인 마트를 걸어 나오며 깨달았

다. 말라 가는 것이 내가 아는 생(生)의 전부라는 걸.

 

 

 

 

 

 

* 어,하는 사이에 어느새 아홉이 되어버렸다.

내년이면 젊다는 소리도 못들을 터라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이건 엄살용 멘트다.)

멸치처럼 말라가는 인생이고

겨우 국물용으로나 쓰임받는 존재가 되어간다.

돌아보면 은빛 찬란했던 시절은 지나간 것 같고

끝내주는 국물로 칭찬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은빛으로 펄떡이던 때가 있었음을 감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그리고 국물이라도 낼 수 있음을 감사해 한다.

국물만 내면 건져지고 버려지는 멸치.

사람은 누구든지 국물만 내고 버려진다, 멸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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