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고영민]

JOOFEM 2009. 3. 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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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갈아엎기 전의 봄 흙에게[고영민]

 

 

 

 

산비알 흙이

노랗게 말라있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 들떠 있다

저 밭의 마른 겉흙이

올봄 갈아엎어져 속흙이 되는 동안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을

땅 속에서 조금씩

잊는 동안

축축한 너를,

캄캄한 너를,

나는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슬픔이라고 불러야 하나

 

 

 

 

 

 

 

 

* 직원 한명이 사표를 던지고 사라졌다.

거의 십팔,구년을 같이 근무했던 것 같은데 확 갈아엎은 흙처럼 잊혀지게 되었다.

지난 달부터 전쟁이 난다는 둥,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둥 헛소리를 하더니

집도 팔고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증발되었다.

업무도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작년까지만 해도 쓸만한 일꾼으로 올핸 연봉도 조금 올려주어야겠다 했는데

갑자기 속을 썩이고야 만다.

그럭저럭 다른 직원을 설득해서 그 일을 이어받게 하고 조치를 끝냈다.

걱정인 것은 아이들도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으니 신문에 날까봐서이다.

믿음도 신실했던 친구였는데 종말론에 빠지더니 그리 되었다.

낯을 주고 익힌 환한 기억들이 천천히 잊혀져 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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