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말[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이 세상을 떠나면 영혼들만 모여 사는 곳이 있을 게다.
서로 바람처럼 스치지만 이름도 모르고 아이덴티티도 모를 게다.
이 세상에서는 세상적인 이름이 있어서 구절초야, 냉이꽃아 불리워졌겠지만
영혼들은 이름없이 살며 바람처럼 스쳐도 인연을 따지지 않을 게다.
이 세상에서는 그 알량한 이름 석 자를 알아서 숱한 괴로움을 얻어 살지만
영혼들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괴로움이 없을 테다.
이 세상에서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괴로움을 얻고 살았다면
착한 당신아, 다음 세상에서는 따뜻한 한줌의 바람이 되어 스치며 살자.
서로 훈풍이 되어 살기로 하자. 바람이 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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