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대머리[권혁웅]
제가 다니던 삼선교회엔 유난히 숙이 많았죠
은숙(恩淑)이,애숙(愛淑)이,양숙(良淑)이,현숙(賢淑)이,경숙(京淑)이,남숙(南
淑)이,난숙(蘭淑)이,미숙(美淑)이,정숙(貞淑)이......
그야말로 쑥밭이었죠 제일 믿음이 좋았던 은숙이,
애숙이는 잠시 나를 사랑했고
양숙이와 현숙이는 정말로 현모양처가 되었죠
경숙이는 지금도 서울에 살지만, 남숙이는
먼데로 이사갔답니다
난숙이는 청초했고 미숙이는 예뻤는데
지금도 제일 기억나는 애는 정숙이예요
어렸을 때 귤껍질 넣은 주전자 물을 뒤집어 썼지만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던 아이
그러던 어느 성탄절에 성극을 하다가
두건과 함께 가발이 홀랑 벗겨진
울지도 않고 끝까지 마리아 역할을 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난 아이, 지금도 어디선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거지꼴을 한 동방박사들을 기다리는거나 아닌지요
* 숙이도 많았고, 자도 많았고 그랬다.
국민학교때 생각나는 아이는 은숙이와 경숙이다.
은숙이는 내 짝이어서 늘 나의 왼팔을 꼬집었고, 그래서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이 있고
경숙이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서 반장을 했었다.
얼굴이 예뻤던 은주도 기억이 나지만 가장 궁금한건 경숙이다.
그렇게 똑똑한 아이는 어떻게 살까하는 게 가장 궁금하다.
나도 *장을 하기는 했지만 걔는 정말 차이나는 아이였다.
사학년 올라가면서는 남녀가 갈려서 다시는 한 반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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