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숙제와 폐타이어[복효근]

JOOFEM 2009. 4. 4. 20:59

                                                                                                                                                사진 : 추상공간님

 

 

 

 

 

숙제와 폐타이어[복효근]

 

 

 

 

 

숙제장 노트를 엎어놓은 듯한 슬레이트 지붕위에

폐타이어 몇 개 놓여있다

그렇지 삶은 숙제이지

저 작은 지붕 아래도 풀어야 할 문제는 잔뜩 쌓여서

때로는 새벽까지 불이 밝았다

그래서 지아비가 다시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지어미는 그보다 먼저 까만 비닐봉지에

두부를 사들고 들어가 찌개를 끓였을 것이다

그래 잘 풀었다고 선생님이

착한 아이 숙제장에 그려준 동그라미처럼

하느님이 동그라미 대신 폐타이어를 올려놓았을지도

모르지

가끔은 냄비가 뒹굴고

흐느낌 소리가 마당귀를 적셨으나

요란하게 풀 문제도 있긴 하는 거라

숙제를 잘 풀긴 하였던지

이번 태풍에도

지붕 끄떡없다 폐타이어 몇 개

저 수레 같은 집 한 채 끌고

이 밤도 어느 하늘 향하여 가려는지

창에 다시 환하게 불이 켜지고

거기에 응답하는

누구의 미소인가 하늘엔 눈썹달

 

 

 

 

 

 

* 인생은 숙제투성이다.

잘 사는 사람에게도 숙제, 못 사는 사람에게도 숙제가 있다.

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도 숙제가 있고 근심이 많아도, 근심이 적어도 다 고만고만한 숙제들이 주어진다.

더러는 페타이어처럼 동그라미가 쳐지며 '참 잘했어요'라고 누군가 적어주기도 하겠지만

더러는 동그라미 대신 태클을 받기도 할 터이다.

숙제를 벗으면 숙제가 없을 줄 알지만 숙제는 끝이 없다.

인생의 짐을 내려놓지 않는 한 숙제는 늘 그만한 양과 질을 유지할 게다.

마치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도 되는 양.

 

인생의 짐을 내려놓아야 그려지는 동그라미를 기다리며

일부러, 짐을 내려놓은 타이어를 내 숙제위에 미리 얹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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