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추상공간님
숙제와 폐타이어[복효근]
숙제장 노트를 엎어놓은 듯한 슬레이트 지붕위에
폐타이어 몇 개 놓여있다
그렇지 삶은 숙제이지
저 작은 지붕 아래도 풀어야 할 문제는 잔뜩 쌓여서
때로는 새벽까지 불이 밝았다
그래서 지아비가 다시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지어미는 그보다 먼저 까만 비닐봉지에
두부를 사들고 들어가 찌개를 끓였을 것이다
그래 잘 풀었다고 선생님이
착한 아이 숙제장에 그려준 동그라미처럼
하느님이 동그라미 대신 폐타이어를 올려놓았을지도
모르지
가끔은 냄비가 뒹굴고
흐느낌 소리가 마당귀를 적셨으나
요란하게 풀 문제도 있긴 하는 거라
숙제를 잘 풀긴 하였던지
이번 태풍에도
지붕 끄떡없다 폐타이어 몇 개
저 수레 같은 집 한 채 끌고
이 밤도 어느 하늘 향하여 가려는지
창에 다시 환하게 불이 켜지고
거기에 응답하는
누구의 미소인가 하늘엔 눈썹달
* 인생은 숙제투성이다.
잘 사는 사람에게도 숙제, 못 사는 사람에게도 숙제가 있다.
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도 숙제가 있고 근심이 많아도, 근심이 적어도 다 고만고만한 숙제들이 주어진다.
더러는 페타이어처럼 동그라미가 쳐지며 '참 잘했어요'라고 누군가 적어주기도 하겠지만
더러는 동그라미 대신 태클을 받기도 할 터이다.
숙제를 벗으면 숙제가 없을 줄 알지만 숙제는 끝이 없다.
인생의 짐을 내려놓지 않는 한 숙제는 늘 그만한 양과 질을 유지할 게다.
마치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도 되는 양.
인생의 짐을 내려놓아야 그려지는 동그라미를 기다리며
일부러, 짐을 내려놓은 타이어를 내 숙제위에 미리 얹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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