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구백팔십년의 어느 봄날에 양수리에서 엠티 마치고
또 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최영미]
멀리 있어도 비릿한, 냄새를 맡는다
기지개 켜는 정충들 발아하는 새싹의 비명
무덤가의 흙들도 어깨 들썩이고
춤추며 절뚝거리며 4월은 깨어난다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가 짧게 울려퍼진 다음
9시 뉴스에선 넥타이를 맨 신사들이 침통한 얼굴로
귀엣말을 나누고
청년들은 하나 둘 머리띠를 묶는다
저 혼자 돌아다니다 지친 바람 하나
만나는 가슴마다 들쑤시며 거리는 초저녁부터 술렁였지
발기한 눈알들로 술집은 거품 일듯
부글부글 취기가 욕망으로 발효하는 시간
밤공기 더 축축해졌지
너도 나도 건배다!
딱 한잔만
그러나 아무도 끝까지 듣지 않는 노래는 겁없이 쌓이고
화장실 갔다 올 때마다 허리띠 새로 고쳐맸건만
그럴듯한 음모 하나 못 꾸민 채 낙태된 우리들의
사랑과 분노, 어디 버릴 데 없어
부추기며 삭이며 서로의 중년을 염탐하던 밤
새벽이 오기 전에 술꾼들은 제각기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택시이! 부르는 손들만 하얗게, 텅 빈 거리를 지키던 밤
4월은 비틀거리며 우리 곁을 스쳐갔다
해마다 맞는 봄이건만 언제나 새로운 건
그래도 벗이여, 추억이라는 건가
* 얼마전 대학 써클 동기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다.
분당의 한 식당에서 모처럼 웃고 떠들며 옛 이야기에 몰두하였었다.
이야기 가운데에는 소식이 뜸한 동기들에 대한 궁금함이 늘 묻어있다.
그 중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하루꼬에 대한 말도 나왔다.
대개 일본에 출장가면 다들 한번씩 안부전화를 주곤 하던 친구.
원래 일본 이름은 봄 春자를 쓰는데 한국이름으로 옮길 때 동사무소 직원이 실수로 靑자로 바꾸어 더 예쁜 이름이 되었었다.
지금은 일본인으로 완전히 귀화해서 그 예쁜이름은 아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총무여서 뜸한 동기들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본에 전화를 걸었었다. 한 십사년만에 거는 전화였다.
너무 반가워해주고 목소리도 예전과 같았다. 나이 오십인데도 아직 옥구슬같은 목소리.....
일을 같이 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같은 교회를 다니기도 했고 연극구경을 함께 다녔다.
혼자 한국에 와서 공부를 했으므로 많이 외로와 했고 그래서 불꺼진 방에 들어가는 걸 싫어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자취방으로 편지를 보내주는 일이었다.
부회장이었던 하루꼬는 키도 크고 어른스러워 써클의 어머니로 불리웠다.
같이 써클생활을 했던 나의 아내는 '좋아했구나'라고 짓궂게 질문을 하곤 했다.
목련처럼 깨끗한 아이였는데 지금 아들 둘이 대학생, 고등학생이란다. 우리랑 동갑인 아이들.
내가 준 '주페습작모음집'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려나, 아직도 유효한 영원한 친구!
* ㅇㅊ묘소에는 잔디밭이 있어서 뒹굴며 놀기 딱이다. 지금은 묘소가 없어지고 건물이 들어서 있다.
* 남학생들은 늘 우중충했지만 여학생들은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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