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교가를 부르다[맹문재]

JOOFEM 2010. 2. 3. 22:34

 

 

 

 

 

 

교가를 부르다[맹문재]

 

 

 

 

교문 사이로 보이는 교정의 나무들은 낯설도록 키가 컸지만

교실은 왜소했고

용접을 하고 주조를 하던 실습관은 헛간처럼 허름했다

 

정문처럼 서 있는 수위아저씨에게 다가가 

몇 해 졸업생이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시를 가르쳐준 국어 선생님이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다시 인사를 드렸는데

알아보지 못하는지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셨다

학교와 미리 얘기가 됐냐고 물으셨고

방문하려면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 하며 가방을 넘겼는데

선생님은 이리저리 뒤지다가 책을 한 권 꺼낸 뒤

이런 불순한 것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니

압수한다고 했다

 

군대나 교도소도 아닌데 이래도 되느냐고

나는 말을 더듬으며 항의했다

"전태일평전"을 읽는 제자를 대견하게 여기기는 커녕

어째 탄압하느냐고

시를 가르친 스승으로서 너무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래? 그럼 교가를 불러봐!

 

나의 막말을 다 들은 선생님은 또 다른 요구를 꺼냈다

순간, 아랫목같은 손길이 전해왔다

 

나는 왕주먹 같은 공고생이 되어 스무 몇 해 만에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 지금 학교를 찾아가서 국어선생님한테 딱 걸린다면,

그래서 교가를 부르라고 한다면 교가를 다 부를 수 있을까.

교가는 대개 산의 정기를 받는 탓에 산이름만 기억 난다.

삼각산 정기 받아 굳센 몸 되고~~~~

관악은 내려와~~~~

북악산 기슭에~~~~

삼십년이 지나 교가를 부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외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특히나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다 정년퇴직하셨을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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