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슬픔의 기원起源[김명기]

JOOFEM 2010. 3. 8. 22:41

 

 

 

 

 

 

 

 

 

슬픔의 기원起源[김명기]

 

 

 

 

혼자 먹은 저녁상을 물리고

한 개의 밥그릇과 국그릇을 씻고

한 쌍의 수저도 씻어놓고

혼자 잠들 자리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순간 눈알이 뜨끈해진다

미친 듯이 차들이 내달리는 도로 위

피투성이인 채 축 늘어진 개 한 마리, 필사적이다

두려움 없이 제 몸을 사지로 내몬 저 개

오히려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거리를 배회하고

후미진 동네 구석에서 눈치껏 사랑을 나누던

곁이 사라진다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비칠비칠 개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먹먹한 하중을 견디지 못한 가슴은

아슴하게 무너져 내리는데, 슬픔은

저렇듯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터져 나오는 것인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생을 잣는 일이란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미망未亡이어서

결국 혼자서 나눌 수 없는 거다

오늘 내 가슴에 모서리가 없는 것도

이 순간 저 개들과 슬픔을 나눠가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회사 출근길은 샛길이 있어서 산을 하나 타고 넘으면 금방이다.

소로를 달리다 보면 사시사철 산수유며 목련이며 각종 꽃들이 피는 까닭에 늘 눈의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가끔 청솔모가 차에 깔려 죽는 참변이 있다.

신기한 건 한 마리가 죽으면 며칠 뒤 또 한 마리가 죽는다는 거다.

그런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잃어버린 짝지때문에 소로에 나섰다가 투신을 한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검은 봉지가 사라지면 울면 그만이지만

짝지가 사라지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슬픔조차 나눠 가질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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