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거울[구석본]

JOOFEM 2010. 3. 24. 15:32

 

 

 

 

 

 

 

거울[구석본]

 

 

 

 

그가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한 남자가 죽어 있다

죽은 남자가 웃는다 '웃음'이 죽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죽는 남자가 말하자

'좋은 아침'이 죽었다

남자는 '웃음'과 '좋은 아침'의 죽음을 보지 못한 채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향수를 뿌리고

로션을 가볍게 바르고는 다시 웃는다

웃음이 두 번 죽지만 남자는 여전히 보지 못한다

이번에는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이 핑그르 돌다가 죽어버린다

남자는 쌓이고 쌓인

그들의 죽음을, 남자의 죽음을, 오늘의 죽음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난다

남자가 떠난 후,

시취尸臭가 향수처럼 한동안 맴돌다가 사라지자

비로소 거울 속에는 복제된 어제의 풍경들이

속속 살아나기 시작했다

 

 

 

 

 

 

 

 

 

* 가끔 거울을 볼 때,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어, 주인서씨가 왜 거울 속에 있지?

어, 아버지가 왜 거울속에 계시지?

어려서는 외탁했다고 엄청 구박도 받고 나와 다르게 생긴 아버지와 형을

다른 인류로 생각했었다.

한데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아버지와 닮았고 형과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거울이나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영락없이 형의 모습이다.

지난 날, 난 얼마나 다른 인류를 미워하고 다르게 대하였던가.

매일 면도를 하면서 나는 아버지와 형을 만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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